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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차 연성/탈(TAL)

[호무영] 단문




이그나지오, 그러니까 호의 세계는 제 쌍둥이 형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.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고 -물론 그의 생사와 관련되어있다면 제외다.- 바란다면 손가락 한 두 개 정도야 내다 줄 수도 있었다. 물론 제 쌍둥이 형제는 제 손가락을 바라기는커녕 어디 하나 부러지기만 해도 걱정할 테지만. 그 점이 또한 호가 제 형제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.

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. 떨어져 있던 시간은 제법 길었지만 함께 한 시간 또한 짧지 않았다. 호의 쌍둥이 형제, 그러니까 무영은 호를 최우선 순위로 둘 수는 있을지언정 그를 중심으로 세계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. 그를 가장 커다란 도시에 담아둘 수 있을지언정 그가 세계를 독차지하게 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. 사랑하는 형제에겐 자신을 제외하고도 그 세계에 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. 이상하게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은 나의 사랑스러운 동생. 그런 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두라는 제멋대로인 강요는 할 수 없었다. 가끔은 질투를 느끼고, 너도 나와 함께 하면 안 되겠냐는 진심이 담긴 헛소리를 나열하고 싶어 지지만.. 그를 만나기 위해 10년 넘게 기다렸다. 호는 기껏 누리게 된 이 시간을 그렇게 산산조각내고 싶지 않았다. 손을 뻗어 제 앞에서 걷고 있는 동생의 어깨를 톡 하고 쳐본다. 제 얼굴과 똑 닮았으나 자잘한 부분이 다른 얼굴이 저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.

- 왜, 호?

익숙하고 그리웠던 목소리. 이제는 일상 속에 함께 녹아들 목소리. 허나 언제 또다시 잃어버릴지 모를 그. 기억해두기라도 하려는 듯 잘근잘근 곱씹자 대답이 오지 않는 것이 의아한지 무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. 자줏빛 눈은 다정함을 품고 있다. 사랑하는 내 동생, 앞으로도 쭉 함께지? 목구멍까지 간질간질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키고선 핑곗거리를 생각해낸다.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가볍게 길을 걷는 동안 해는 저물고 너의 머리색을 닮은 밤이 깊어온다. 호의 세계는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끝마친다. 부디 내일도 별 탈 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. 내일은 잊혀진 이들의 구역이 조금 더 좁아질 수 있기를. ..내일은 그의 세계에서 내가 조금 더 넓은 구역을 가질 수 있기를. 그러한 허무맹랑한 기도들과 함께.